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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의 속' 2009-12-04
관리자 | 2011/08/06 06:37:22
어디가 이 꽃의 속에 대한
 밖인가요? 그 어떤 아픔 위에
 이런 아마(亞麻) 천이 내려왔나요?
 이 우울을 모르고
 활짝 핀 장미의
 그 호수 속에 비치는 것은
 어느 하늘인가요? 보세요.
 어떻게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
 늘어져 있는가를, 떨리는 손길도
 그것을 흩어버리지 못할 만큼
 장미는 제 몸을
 가누지 못하네요. 그 많은 꽃들은
 필 대로 피어
 안에서 바깥으로 넘쳐 나지요.
 갈수록 쨍쨍한 대낮 속으로 들어가
 마침내 온 여름을 한 칸 방(房)으로 만듭니다.
 꿈속의 방으로 말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장미의 속’
 
 1875년 오늘 ‘장미의 시인’ 릴케가 세상에서 첫 울음을 울었습니다. 조산아, 미숙아로 태어나 일곱 살 때까지 여자 옷을 입고 지내야만 했습니다. 어머니가 태어나자마자 죽은 딸을 잊지 못해서 릴케를 여자아이처럼 키운 것이죠.
 
 릴케는 육군유년학교와 육군고등실업학교 등 자신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곳에서 열등생으로 공부하다가 그만 두고 프라하대, 뮌헨대, 베를린 대에서 예술, 문학, 철학, 법학을 공부합니다.
 
  22살 때 ‘연상의 여인’ 루 살로메를 만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며 시인의 토양을 닦았고 27세 때에는 조각가 로댕의 비서 역할을 맡으면서 사고의 지평을 넓힙니다.
 
 그는 1923년부터 시름시름 앓다가 요양원에서 문병 온 독자에게 장미를 따주다 가시에 찔려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사인(死因)은 백혈병이었습니다. 숨지기 얼마 전에 진단결과가 나왔지만 릴케는 자신이 장미꽃 가시의 희생양이 됐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직접 아래와 같은 묘비명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장미의 시인’ 릴케는 그렇게 장미향기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그 누구의 잠도 아닌 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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